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문단 편집) === 말년 === 이처럼 몬테베르디는 베네치아에서 바쁘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았으나, 1631년 베네치아에 [[페스트]]가 창궐하게 되고 이 와중에 산 마르코 성당의 성가대로 활동하고 있던 맏아들 프란체스코를 전염병으로 잃는다. 이 때의 충격 때문인지 그는 한동안 작곡과 악장으로서의 활동을 중단하였으며 이듬해인 1632년 사제 서품을 받고 정식 성직자가 된다. 당시 그는 이미 60을 한참 넘긴 나이인데다 아들을 잃은 충격 때문에 건강을 해쳐서 자주 앓아 누웠는데, 다행히 창작활동을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아서 이후에도 중요한 작품들을 남겼다. 1634년에는 자신의 작곡 방법과 음악철학에 대해 서술한 저서 멜로디아(melodia)가 간행되었는데 이 저서는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1638년에는 세속 마드리갈 7집이 출판된지 거의 20년만에 8집이 출판되었는데 '전쟁과 사랑의 마드리갈(Madrigali guerrieri, et amorosi)'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몬테베르디 특유의 소위 격앙양식(stile concitato, agitated style)으로 작곡되었으며(자세한 것은 아래 작품 항목 참조),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3세에게 헌정되었다.[* 원래는 페르디난트 2세에게 헌정될 예정이었지만 곡을 다듬으면서 출판이 미뤄지는 동안 페르디난트 2세가 사망하는 바람에 후임으로 황제에 즉위한 아들에게 헌정되었다.] 1637년 몬테베르디가 살고 있는 베네치아에 유럽 최초의 대중 오페라극장인 산 카시아노(San Cassiano)가 건립되었다. 그간 오페라는 주로 귀족과 부자들을 위한 여흥거리였지만 이 오페라극장의 건립으로 일반 시민들도 당대의 고급문화인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몬테베르디 역시 이 극장에서 상연을 위한 작품을 여럿 남겼는데, 1639년 베네치아 축제 기간에 오페라 오딧세이의 귀향( Il ritorno d'Ulisse in patria)이 상연되었고 그가 선종하기 1년 전인 1642년에는 오르페오 못지 않게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식(L'incoronazione di Poppea)이 상연되었다. 1643년 11월, 향년 76세를 일기로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큰 성당인 프라리(Frari) 성당에 안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